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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나라를 이끌게 된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 뜰에 앉아 환한 표정으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1948.8.15
ⓒ 연합뉴스
3월은 이승만에게 잔인한 달이었다. 그가 무너진 것은 4월이지만, 그를 저주하는 시위가 전국적 현상이 된 것은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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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혁명의 신호탄이 된 2·28 대구 의거는 윤일인 29일을 건너뛰어 3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3월 1일 대구·서울, 5일 서울, 7일 부산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8일 대전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더니 10일 부산·대구·충주·대전·수원, 11일·12일 부산, 13일 오산·서울, 14일 포항·부산·원주·인천·서울 등에 통상임금 식대 서 시위가 일어났다.
부정선거 당일인 15일에는 마산과 진주·부산·포항·광주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 함성은 4월 11일의 제2차 마산 의거로 더욱 거세지다가 4월 19일 대통령 관저(경무대) 앞에서 절정에 도달했다. 이승만은 발포와 계엄선포로 응수했지만, 이 함성을 잠재우지 못했다. 지금의 서울 대학로에서 교수단 시위가 시작된 다음 캐피탈회사 날인 26일, 그는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자신의 생일에 국민 동원한 이승만
그해 3월의 성과는 한국인들의 의지와 도전이 이뤄낸 결과물이지만, 하필이면 3월이 그렇게 된 데는 이승만 자신의 선택도 작용했다. 집권 기간 내내 이승만은 국민들이 3월만 되면 자기를 생각하며 집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이승만 새희망홀씨대출은행 정권은 정부 출범 이듬해인 1949년부터 대통령 생일이 있는 3월을 국민 동원의 달로 만들었다. 정부수립 7개월밖에 안 되는 그해 3월 26일에 가가호호 태극기를 게양하게 하고,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등이 참석하는 공식 생일파티를 열었다.
장갑차 2대와 지프차들의 호위를 받는 대통령 차량이 경복궁 중앙청에 들어설 때는 "만수무강을 축복하는 최수영 주악 소리"가 연주됐다. 국회의장 선창으로 대한민국 만세삼창에 이어 대통령 만세삼창을 외치는 장면도 이날 나왔다(3월 26일·27일 <조선일보>).
대통령 생일에는 민간 차원의 행사도 많았다. 축하 방송, 향나무 심기, 족자 써서 바치기, 학예회, 체육대회, 매스게임 등이 전국에서 열렸다. 1959년 3월 26일 자 <동아일보> 3면에서 확인되듯이 서울운동장에 약 2만 명이 동원되는 일도 있었다. 서울 남산의 이승만 동상과 광화문 앞의 우남기념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 계획 등도 그의 생일을 기리고자 기획된 것들이다.
이로 인한 국민적 피로감은 하야성명 이후의 반응들이 잘 보여준다. 1960년 5월 12일자 <경향신문> 3면 '민의' 코너에 '일(一)학생' 명의로 투고한 독자는 "이 박사의 생일에는 행사하느라고 무수한 어린이들을 얼마나 괴롭혔으며, 송가니 송시니 작문이니 하여 얼마나 눈꼴 사나운 일을 강요했는가"라며 치를 떨었다.
그해에 '일학생'보다 더한 방법으로 분노를 터트린 학생이 훗날 대통령이 되는 경남 김해 진영중학교의 노무현(14세)이다.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그는 "그해 2월에 이승만 대통령 생일을 앞두고 모든 학교가 대통령을 찬양하는 글짓기 행사를 열었다"라며 급우들이 자신의 주도로 백지 원고를 제출한 일을 회고했다.
노무현은 그날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의 사망 뉴스가 보도된 날이라고 말했다. 조병옥이 미국에서 운명한 다음날인 2월 16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 생일을 한 달 이상 앞둔 시점에 전국의 학교에서 찬양 행사가 열렸던 것이다.
그날 노무현은 '택도 없는 인물'이라는 의미를 담아 '우리 이승만 택통령'이라고 제목을 쓴 뒤 백지 원고를 제출했다. 노무현이 주도한 이 '쿠데타'를 보고 감독관인 여자 선생님은 울음을 터트렸다. 이런 분노의 힘들이 한 데 응집돼 그해 8월 24일 남산의 이승만 동상은 쓰러졌다.
3·15 대선을 무효 처리하고 새로운 대선에서 윤보선이 당선된 다음날인 그해 8월 13일, <동아일보> 사설은 이승만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윤 대통령에게 충고한다. "윤 대통령은 이승만이 남겨놓은 모든 폐습과 폐해를 타파·일소하고 제이공화국의 철저한 민주화에 헌신·봉공해주기를 우리는 또한 희구한다"라며 제1공화국의 대표적 폐습으로 "인의 장막 안의 비서정치, 경무대의 궁정화, 생일잔치의 호화" 등을 열거했다. 이처럼 그의 생일을 열두 번이나 챙겨주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3월 26일을 대표적 폐습과 연결지어 생각하게 됐다.
선거 3월로 앞당긴 이승만의 패착
▲ 78회 생일을 맞은 이승만 대통령이 축하휘호를 쓰고 있는 학생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1953.3.26
ⓒ 연합뉴스
심지어 이승만은 개인 우상화를 위해 국민들을 동원하던 3월을 막판에 가서는 다른 용도로 활용했다. 1960년에는 그달을 '4선의 달'로 만들고자 했다. 이 결정은 국민들에게 이례적이고 어이없는 처사로 받아들여졌다.
1956년에 시작된 이승만의 세 번째 임기는 1960년 8월 14일까지였다. 당시 헌법 제56조 제1항은 "늦어도 임기가 만료되기 30일 전에 그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규정했다. 그래서 7월 14일 이전에 대선을 치르면 됐었다.
그런데도 임기 만료 5개월 전인 3월에 대선을 치르고자 했다. 3월은 야당이 불리할 때라는 판단에서였다. 신·구파의 알력이 심한 민주당은 1959년 11월 26일에 구파 조병옥과 신파 장면을 각각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한 뒤에도 심각한 내분을 노정했다. 거기다가 조병옥은 위암인지 위궤양인지 불분명한 건강 문제로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상황에서 이승만 정권은 조기 대선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1956년 대선 때 부통령직을 야당에 내준 자유당은 '정·부통령이 동일 정당에서 나오도록 하는 개헌에 동의해주면 6월에 대선을 치르고 그렇지 않으면 3월에 치르겠다'라고 야당을 압박했다.
그러던 차에 조병옥이 1960년 1월 19일에 '약 20일이 소요되는 위장수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20일 자 <조선일보> 1면)한 뒤 29일 미국으로 출국하자, 자유당 정권은 곧바로 조기 대선을 확정 지었다. 2월 2일 자 <조선일보> 헤드라인에 따르면, 조병옥이 수술받으러 떠난 지 사흘 뒤인 2월 1일 밤에 자유당은 '3월 15일 실시'를 내부적으로 합의했다. 국무원 명의로 선거일을 공고한 것은 3일이다.
2월 15일의 조병옥 사망으로 유력한 야당 후보가 사라지자, 국민들은 선거 연기나 후보자 추가 등록 등을 요구했다. 이승만 정권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앞세워 이 논란을 차단했다. 2월 18일, 김두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일정 변경이 불가하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로 시작하는 <유정천리>가 그 상황에 맞게 개사돼 유행한 데서도 확인된다. 개사된 노래에는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뒤를 따라 / 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 박사도 떠나갔다", "세상을 원망하랴 자유당을 원망하랴 / 춘삼월 15일 조기 선거 웬말이냐" 등의 구절이 들어갔다. 그해 2월 22일 자 <동아일보> 3면 좌하단에는 10대 학생들도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바람에 교사들이 당황해 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백지 원고를 제출한 그날, 노무현은 교무실에서 온종일 벌을 섰다. 그때 어느 교사가 조병옥 사망 뉴스가 실린 신문을 보면서 "역시 이승만 대통령은 운을 타고난 사람이고 하늘이 내신 분이야"라고 감탄했다. 이 말에 반감이 생겨 노무현은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고 <운명이다>는 말한다.
위 교사와 같은 생각을 한 이승만 정권은 여론을 무시한 채 3월 15일 선거를 밀어붙였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을 크게 자극했다. 이승만 생일 행사가 열리기 시작해 학생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시점에 이들을 자유당 선거 유세에도 동원했다.
그때까지 대선은 1948년 7월 20일, 1952년 8월 5일, 1956년 5월 15일, 총선은 1948년 5월 10일, 1950년 5월 30일, 1954년 5월 20일, 1958년 5월 2일에 열렸다. 생일잔치 때문에 안 그래도 바쁜 3월에 전국적 선거가 열린 적은 없었다. 그래서 3월 대선을 위한 자유당의 학생 동원은 10대들의 반감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 됐다.
이에 대한 첫 번째 대규모 반발이 2월 28일 대구에서 일어났고 3월에는 전국의 학생과 시민들이 일어섰다. 안 그래도 매년 3월마다 이승만을 위한 정치행사에 동원됐던 한국인들은 그해 3월에는 이승만이 시키지 않는데도 거리로 뛰어나와 이승만을 마음껏 '연호'했다.
이승만은 자신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는 3월을 대선일로 잡았다. 이는 그에 대한 저항의 강도를 높이는 한 가지 원인이 됐다. 국민들이 자신을 가장 많이 찬양했던 3월에 네 번째 대선 승리를 확정 짓고자 했던 그는, 바로 그 3월에 국민들이 자신을 저주하는 의외의 모습을 목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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