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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신기한 기사가 신문에 났다. 평양 숭실전문교수 이용규가 국산 만년필 잉크를 발명했다는 소식이었다.
‘숭실대학 교수 이용규씨는 1917년에 미국 ‘네뷰라스카’대학교에서 화학공업 학사위를 받고...지금은 우리 민족에게 실업방면으로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재작년에 귀국하여 학업에 노력하면서 여가를 이용하여 석감과 기 국민은행 카드사 타 여러가지를 발명하다가 금년부터는 공제(共濟)제작소를 평양부 신양리에 설치하고 먼저 조선특산만년필용 ‘모란잉크’를 각종으로 신발명하고 대대적으로 사업발전을 기도하는데, 기간에 수만병을 방매한 바 품질이 양호할 뿐더러 우리의 손으로 제작한 것이라 하여 각 사회에서 주문이 답지한다더라(평양)’ (모란잉크 신발명, 조선일보 1923년8월29일)
전세자금대출 상환 이용규의 ‘모란잉크’ 발명은 당시 대대적으로 진행된 물산장려운동 일환으로 이뤄졌다. 우리 손으로 만든 우수한 품질의 잉크는 수만 병이 팔려나갈 만큼 인기를 모았다.
하와이 이민선 코리아 호. 이용규가 1904년 초 하와이로 타고 간 1만8000톤급 대형 증기선이다. 석판 대신저축은행 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함흥 빈민 출신, 하와이 이민선 타
잉크를 발명했다는 이용규(李容奎 1881~?)는 누구일까. 놀랍게도 그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건너간 1세대 미국 이민자다. 게다가 조선인 최초로 미국 대학에서 화학으로 석사를 받은 이례적 경력의 소유자다. 함 개인파산신청기간 경남도 함흥의 빈농(貧農) 출신으로 1904년 원산에서 배를 타고 부산, 고베를 거쳐 하와이로 향했다. 24번째 이민선에 탄 승객 107명과 함께 3월30일 호놀룰루 항에 도착했다.
최소 의무노동 기간 1년만 채운 뒤 몇몇 동료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건너갔다. 월급을 두 배이상 받을 수있었기 때문이다.1906년 다시 콜로라도 주 덴버로 옮겼 부산수협 다. 이곳엔 박용만이 삼촌 박희병과 함께 노동 주선소 겸 숙소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만년필용 '모란잉크' 신문광고. 이용규가 1923년 개발했다. 동아일보 1923년5월8일자
◇‘병아리 틈에 타조가 섞인 듯’
이용규는 박용만 소개로 미국인 교회 지하실에서 지내면서 청소, 정원일을 하며 초등학교 2학년 과정에 들어갔다. 스물다섯 청년이 꼬마들과 어울려 수업을 들었다. ‘병아리 틈에 타조가 섞인 듯하다’고 고백할 만큼 어색한 풍경이었다.
‘글자마다 처음 보는 터이라 미처 받아쓸 수가 없고 교사의 설명하는 말은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처음에는 등에서 땀이 흐르더니 나중엔 이마에서도 땀이 흐른다.’(자랑할 청년 이용규, 신한민보 1917년9월13일) 훗날 교포신문에 털어놓은 회고담이다.
◇“20세기 경쟁시대에 생존하려면 화학을 알아야”
1908년 중등과정인 덴버대학 예비학교에 입학했다. 덴버대 총장을 직접 면담해 따낸 성과였다. 영어, 라틴어, 대수, 생리학, 물리학, 화학 등을 배웠는데, 과학과 수학에서 90점 이상을 받았다. 4년만에 중등과정을 마치고 1912년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에 진학했다. 서른 한살, 만학도였다.
이용규는 문과를 선호하던 조선인 유학생들과 달리 화학을 전공했다. ‘화학은 의학상에만 필요할 뿐만 아니오, 농, 공 실업에 더욱 긴요하니 우리가 물질을 발달시키려면 바꾸어 말하면 이 20세기 경쟁시대에 생존하려면 그 인민이 화학의 전문적 지식이 있어야 하리로다.’(자랑할 청년 이용규5, 신한민보 1917년10월25일) 이용규의 전공 선택 이유다.
◇숭실전문 교수로 부임
1916년 학부를 졸업한 그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3학기, 1년제로 이듬해 석사 학위를 받고 네브래스카의 의학전문학교 강사,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공업연구소 연구원으로 활약했다. 1919년 귀국하면서 외국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채용됐다. 학교측이 근대 학문 교육과 과학 요원 양성을 위해 이학과 개설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는 숭실전문의 이학과 설치를 허가하지 않았다. 1927년 이학과 대신 농학과과 개설됐고 그는 사임했다.
1928년 고려발명협회가 창립됐을 때, 과학기술자로 상임이사에 참여했다. 이 협회에 참여한 김용관, 박길룡은 1932년 발명학회를 재건하고 과학데이를 제정해 행사를 개최하는 등 과학대중화에 힘썼다.
◇광복후 흥남공대 화학공학부 교수
숭실전문 퇴직 후 황금광 열풍에 뛰어들었다. 작가부터 변호사까지 금광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때였다. 1932년 봄 함남 신흥군 부흥리에서 금맥을 발견, 시굴 작업에서 성과가 좋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금값이 나날이 높아감에 따라 일본은 물론 조선내에서도 금광열이 자못 놀랄만치 높아감은 일반이 주지하는 바이나 취중 함경남북도의 금광열은 참으로 높아간다. 서호진 리용규씨는 일찍이 미국에 가서 다년간 유학을 하다가 이학사의 학위를 얻고 귀국시 평양 숭실전문학교 응용화학광산과에서 8년간이나 교수하다가 재작년에 사직하고 탐광에 종사하야 평남북 함남북 각도로 다니다가 지난 봄 함남 신흥군 하원천면 부흥리에서 광구를 발견하고 저간 제반 수속을 마치고 얼마전에 시굴하였는데 성적이 매우 좋다 한다. 광부는 누구든지 임금분배제로 하는데 분광업자들은 날로 증가한다고 한다.’(신흥군下에서 대금광발견, 중앙일보 1932년11월28일)
하지만 실제 금광 운영으로 이어지진 않은 모양이다. 이용규는 고무공장, 비누공장 등을 운영하다 1930년대 중반부터는 과수원을 운영했다. 광복과 함께 서울에 내려와 숙명여자전문학교 교수가 됐다. 미군정하에서 미국 유학생들의 주가가 높아졌지만 60대 중반인 그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던 듯하다.
1947년 9월 북한 첫 공업대학인 흥남공업대학이 설립되면서 남쪽의 과학기술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자 월북해 화학공학부 교수가 됐다. 이 대학 교수진은 남쪽 출신 일본 유학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용규는 이 대학 유일의 미국 유학파 교수였다. 이후 그의 행적은 확인된 바 없다.
◇참고자료
김근배, 이은경, 선유정 편저,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세로, 2024
김근배, 월북과학기술자와 흥남공업대학의 설립, 아세아연구 98,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19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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