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밴드 키보이스와 히식스 등에서 활동하며 우리나라 그룹사운드 전성시대를 연 기타리스트 김홍탁이 7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0세.
인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차중락(보컬), 차도균(베이스 기타), 윤항기(드럼), 옥성빈(키보드)과 함께 우리나라 첫 그룹사운드로 꼽히는 키보이스를 결성해 1964년 독집 음반 ‘그녀 입술은 달콤해’로 정식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국내 그룹사운드의 첫 음반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한국의 비틀스’로 불리며 미8군 무대와 국내 대중 모두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김홍 등록금 학자금대출 탁은 1967년 키보이스를 떠나 이듬해인 1968년 조용남(기타리스트), 한웅(키보드), 유영춘(보컬), 김용호(드럼)와 함께 그룹사운드 히파이브로 활동했다. 히파이브는 ‘초원’을 비롯해 ‘정 주고 내가 우네’ ‘메아리’ 등의 히트곡을 냈다. 이후 멤버를 보강해 히식스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이어갔다. 히식스는 팀을 재편 울산자영업자 한 뒤 발매한 1집 타이틀곡 ‘초원의 사랑’으로 큰 인기를 누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들은 1970~1971년 플레이보이컵 쟁탈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2회 연속 최우수상(대상에 해당)을 거머쥐는 등 최고의 그룹으로 인정받았다.
김홍탁은 1995년에는 그룹사운드 후배들과 함께 서울재즈아카데미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는 생전 ‘그룹사운드 명예의 전당’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김홍탁 유튜브’를 개설해 투병 중에도 많은 그룹사운드 선후배 뮤지션을 인터뷰하며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열정을 3년에1억모으기 보였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김홍탁은 최근에는 건강이 악화해 스튜디오가 아닌 집에서 유튜브 인터뷰를 진행하는 투혼을 발휘했다”며 “산소호흡기를 늘 쓰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60년대 키보이스에서 고인과 함께 활동한 윤항기는 “김홍탁은 신중현과 쌍벽을 이룬 출중한 1세대 그룹사운드 주민등본 기타리스트”라며 “올해 8월 몸이 좋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키보이스 멤버인 나, 그리고 차도균과 함께 KBS ‘가요무대’에 출연했는데 그게 마지막 방송이 됐다”고 말하면서 안타까워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후 3시 40분. 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