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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노벨박물관 한편의 푸른 찻잔 하나. 이제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지만, 그는 하루에 예닐곱 번 괴로워하던 이에게 조용히 위로의 말을 건넸었다. 딱 찻잔 하나만큼의 다독임이었다.
찻잔의 주인은 글을 쓰는 이였다. 원고지를 채우며 많이도 울었다 했다. 이야기를 쓰기로 선택한 대가였다. 책을 손에서 멀리 떠나보내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야기는 악몽이 되어 지겹게도 꾸준히 찾아왔다. 그러면 그녀는 녹차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대신 홍차잎을 우려냈다. 홍차를 담아낸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노라면, 책 세계 자동차 회사 순위 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이 들려왔다.
내게도 차가 말을 걸어온 순간이 있었다. 학창 시절, 한복을 입고 오랜 건물의 다락방으로 뛰어들어가던 봄날이 떠올랐다. 한창 뛰어놀던 연못이 저만치 아래에 보이고, 발끝에는 작은 먼지들이 닿았다. 땀과 방석 위 먼지를 떨어내고 각자의 자리에 앉은 여고생들. 그때만큼은 숨소리도 조용히 내야 했다. 차를 신용대출한도 내리는 작은 소리만이 공간을 메웠다. 오랜 건물의 부드러운 나무 냄새와 녹차의 향이 섞였다. 차의 온기와 은은하게 자리를 메우던 빛. 그 느리고 섬세한 손짓. 그 순간은 차와 다구들을 모으게 했다. 차를 통해 나를 정돈하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웠다.
영화 ‘애프터 양’의 주인공, 안드로이드 인간 양은 “제게도 차가 그냥 지식이 기업파산절차 아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차의 온기가 퍼져나가며 남기는 향은 순간과 기억을 조용히 붙든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감각기관에도 한계가 있었던 양은, 차를 통해 이 ‘순간’을 경험하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최고의 차를 찾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중국을 누비며 수많은 찻잎을 모으던 그들에게 차가 화이트사탕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모든 게 담긴 것’이라 대답했다. 잎 하나를 따던 날의 미세한 온도와 습도 차이가 차의 맛과 향까지 바꾼다. 흙과 주변 식물, 날씨, 그 땅 위 사람들의 삶까지. 차 한 잔에는 누군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들어 있다.
그 세상을 내 입까지 가져오려면 찻잎을 싼 포장지를 뜯은 이후에도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햇살론 취급은행 . 끓이는 온도는 물론, 물의 경도도 따진다. 누군가는 편의점의 생수들을 가격에 따라 고르겠지만, 차 애호가들은 그 앞을 오랜 시간 서성거리며 어떤 물을 택할지 고민한다. 계절에 따라서 물이 먼저인지 찻잎이 먼저인지, 그 순서도 달리한다. ‘반려 찻잔’도 여러 개 만들어야 한다. 맛의 깊이와 향은 어떤 그릇에 담아 식히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무계원을 찾은 시민들이 다도 체험 특강을 듣고 있는 모습. 한겨레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차는 과정의 예술이다. ‘짜잔’ 하고 최고의 차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공유할 수 있게 되면 참 좋을 텐데. 끓이는 순서를 바꿔보고 입천장을 수없이 데어도, 아득한 시간과 기억이 쌓여도, 무엇이 최고의 차인지 알 수 없다. 무엇이 ‘나에게’ 최고의 맛으로, 향으로 느껴지는지, 작은 실마리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한순간에 피어오르고, 또 그 순간이 지나도 조용한 존재감을 남기는 것. 참으로 어렴풋하다.
내 마음대로 섞어서 만든 차가 생각보다 입맛에 맞았을 때, 문득 수많은 과정이 의무처럼 느껴져 답답함이 몰려왔다.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고 무작정 여러 찻잎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신나서 음악을 고르고 온 사이, 찻잎은 뚱뚱하게 불어터져 있었다. 급하게 찻주전자를 잡아버려 손을 데었고, 온도 조절도 실패해 입천장이 까졌다. 멍하니 앉아 찻잔을 바라보니 아픔이 밀려왔다. 차를 모두 하수구에 부어 버렸다.
우리의 삶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차의 향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수많은 계절과 손길이 모여야 비로소 한 잔의 향기가 완성된다. 역사는 수많은 이의 노력과 희생으로 쓰였다. 차의 잔향처럼, 그들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고, 달라지고, 종래에는 아주 어렴풋해졌지만, 공간 한쪽에, 사람의 몸에 여전히 달라붙어 있다.
우리의 삶도, 사회도 그와 같다
그러나 지금, 이 향기를 덮어버리는 많은 이가 있다. 현재의 승리만을 좇으며 역사를 외면한다. 서로 다른 향과 온도가 어우러질 시간이 왜 필요하냐 되묻는다. 자기가 이미 제일가는 차를 만들었다며, 계속 불을 올린다. 그들의 주전자는 끓다 못해 타올랐다. 경쟁처럼 올려진 불, 조화의 가치는 진작에 사라졌다. 열기를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제는 불을 잠시 꺼야 한다. 제 온도에서 찻잎이 천천히 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식혀나가야 한다. 과정을 서두르지 않고, 서로 다른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에게 꼭 맞는 찻잔은 어떤 것인지, 우리가 만들 최고의 차는 어떤 모습일지, 완성될 그 한 잔을 기대하며.
요즘은 여러 개의 보온병에 차를 나눠 담는다. 다관이 아닌 큰 주전자로 찻잎 몇 장이 아니라 몇 묶음을 끓인다. 팔팔 끓어올랐던 물에 데지 않도록, 한겨울 도로 한복판의 냉기를 맞아도 너무 식지 않도록 신중히 온도를 맞춘다. 뚜껑을 열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잠시 기다린다. 김이 죽어가고 향이 돌기 시작하면, 마음을 놓고 주변 사람들에게 차를 권한다.
어떤 차인지 많은 사람이 물어온다. 홍차, 우롱차, 쑥차…. 집에 남은 차를 털어 왔기에 가끔은 이름을 잘못 말해준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실수가 아니라 수치라고 말했던 거 같은데, 이제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겨울 차라고 말해두자. 차가 남긴 온기와 향으로 기억되면 충분하지 않을까.
김지혜 rhksdyd904@naver.com
선정하며— 나에게 민주주의란 ○○이다
20세기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뭘까. 바로 “민주주의의 대두”(아마르티아 센)다. 민주주의 사상은 20세기 중반 이후가 돼서야 ‘정상적인 통치형태’로 확립됐다는 게 정치학자들의 분석이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귄위주의 국가가 전세계의 3분의 1 이하, 민주주의 국가가 3분의 2 이상이 되면서 비로소 민주주의는 정치적 정통성의 주된 기준이 됐다.
보편성을 획득한 지 50년이 흘렀지만, 민주주의는 여전히 위기를 맞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과 윤석열 탄핵이 웅변한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잠재적 독재자를 가려내는 4가지 주요 신호’를 제시했다. ①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는가 ②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는가 ③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가 ④언론의 자유를 포함해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는가. ‘탄핵 피청구인 윤석열’의 디엔에이(DNA) 그대로다. 소름 끼친다.
제11회차 ‘미지의 소리’ 주제를 ‘나에게 민주주의란 ~(이)다’로 잡은 이유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엠제트(MZ)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선정작을 쓴 김지혜씨는 다도(茶道)를 배우는 과정에 빗대어서 민주주의의 본질에 다가서려 했다. 완성체로서의 최종 결과가 아니라 긴 세월을 인내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점, 서로 다른 입장과 관점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관용함으로써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통찰의 차별성이 높으면서 세련된 비유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구사하는 솜씨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으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다뤘다는 점이 놀라웠다.
앞선 책에서 저자들은 “극단적인 양극화에 빠지지 않고 민주주의 제도가 유지되려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이해,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절제와 자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양당정치와 내로남불의 쳇바퀴를 부숴버릴 에너지를 광장의 MZ들에게서 발견한다.
김창석 한겨레엔 교육부문 대표·한겨레교육 미디어아카데미 강사
미지의 소리 다음 원고를 모집합니다.
다음 주제: 지금까지의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분량: 원고지 10장(2천 자) 안팎
마감: 2025년 3월2일 밤 12시
발표: 제1554호
문의·접수: leejw @hanien.co.kr
※ 응모시 메일 제목은 [미지의소리_이름] 기재, 메일 본문에 [핸드폰번호]를 반드시 기재 부탁드립니다.
※ 원고료: 당선작 1편 10만원, 한겨레교육 마일리지 10만 점
※ 마일리지는 한겨레교육 전강의 대상 적용 가능합니다.
※ 마일리지 사용기한: 적립일로부터 한 달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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