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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스물다섯 청년 박종호가 충북 옥천 종합상가 끝자락에 장의사(葬儀社)를 차렸다. 죽음과 관련된 일이라 부정 탄다며 대로변에 가게를 낼 수도 없던 시절, 두 살 어린 아내 이수희씨와 함께 약 11평(36㎡) 넓이 가게에서 옥천 마을 사람들의 죽음을 매만졌다. 남편은 시신을 닦고 상여를 만들 때 아내는 수의를 지었다. 가게 한쪽 벽면엔 상여가 쌓였고 다른 쪽엔 수의가 걸렸다.
은행 이자율 계산 세월이 50년 가까이 흘러, 20대 남편과 아내는 70대 노부부가 됐다. 더는 상여도 수의도 만들지 않는다. 가게 벽면에 놓인 철제 선반엔 유골함 10여 개, 수의 5벌이 놓여 있을 뿐이다. 20일 본지 기자가 찾은 가게에서 아내 이씨가 미색(米色) 보자기를 펼치며 말했다. “우리 부부가 입을 수의예요. 선반이 비어 있는 걸 보기 싫어 집에 가져다 놓 청년창업지원 지도 못하고 있네요.”
박종호·이수희씨가 운영해온 옥천합동장의사가 올해를 끝으로 문을 닫는다. 1990년대 이후 동네 장의사를 찾기보단 병원 장례식이 보편화했다. 1975년 10만명 이상이었던 옥천군 인구도 5만명 수준으로 절반 넘게 감소했다. ‘장례 현대화’와 ‘지역 소멸’이라는 흐름에서 부부의 장의사도 자연사(自然死)를 맞게 됐다.
담보채무 대전에서 삼베 장사를 하던 부모님을 둔 박씨는 어린 시절 수의 원단을 사러 오는 사람들을 보며 장례 용품을 모두 모아 파는 상점이 있으면 편리하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1976년 당시 대청댐 건설로 옥천 산간에 공사가 진행되는 걸 본 박씨는 이장(移葬·무덤을 옮겨 씀) 수요가 많으리라 예상했고, 시내 중심에 옥천종합상가가 완공되자 즉시 영업소 국민연금 개인사업자 를 차렸다. 박씨는 과거 마을 장례를 도왔던 경험을 살려 솜으로 시신을 닦고, 목공소에서 직접 떼온 목재로 관을 짜고, 꽃상여를 만들었다. 유족들에게 장례 용품을 주문받아 배달하기도 했다.
주검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일이 무섭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박씨는 “매일같이 시신을 봐도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수학학원강사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망인이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였다고 생각하니 무섭지 않았고, 악몽을 꾸거나 밤잠 설친 적도 없었지요.” 하지만 아들 또래 다섯 살짜리 고인의 관을 짤 때는 며칠 동안 가슴이 아렸다.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숨진 이웃 할머니의 시신을 모시면서는 생사의 신비함을 느꼈다.
아내 이씨는 재봉틀을 돌려 수의를 직접 지었다. 친정어머니와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가며 수의 만드는 법을 깨쳤다고 한다. 부부가 만든 수의와 상여는 정성이 가득하다는 소문이 퍼졌다. 새벽부터 “우리 부모님을 여기서 모시고 싶다”는 손님들이 줄을 섰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수의 재봉틀을 돌릴 보조 직원까지 둘 정도였다.
전성기는 1990년대까지였다. 옥천읍에 있던 대여섯 곳 장의사가 문을 닫았고 이젠 부부의 옥천합동장의사가 유일하다. 요즘은 장례나 수의 주문은 없다. 남편 박씨에게 들어오는 월 2~3건 이장 업무가 전부다. 부부는 “병원 장례가 보편화됐지만, 예로부터 조상들은 집에서 죽음을 맞는 것을 커다란 복으로 생각했다”며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도 사망이 임박하면 객사(客死)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퇴원해 집으로 갔다”고 했다.
당시 장례엔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온 마을이 함께 장례를 치렀다. 망자의 이웃·친척들은 부고를 알리고, 염을 하고, 관을 짜고, 수의를 만들고, 음식을 하고, 상여를 멨다. 부부가 지켜온 이 공동체 문화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옥천에서 사라진다. “수의엔 주머니가 없어요. 죽음은 평등합니다. 갈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지요.” ‘공수래공수거’를 강조한 부부는 “영원한 것은 없다”며 “감사한 기억만 가지고 후련히 떠나겠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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